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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학습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으나 한 마디 더 하자.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 이라는 한자성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라는 뜻이다.
프로그래밍 실력을 높이는 일에 있어서는 이 성어가 통하지 않는다.
백번을 보아도 늘지 않는 것이 프로그래밍 실력이기 때문이다.
백 번 보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직접 프로그램을 작성해 보는 편이 실력 향상에 좋다.
그러므로 '백견이불여일작(百見而不如一作)'이라는 말로 성어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백 번 보아도 한 번 작성하는 것만 못하다' 라는 뜻이다.
'가방이 무거울수록 공부를 못한다' 는 말을 농담 삼아 주고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는 그럴 가능성, 즉 개연성이 높은 말이다.
대체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가방 안에 온갖 책을 넣어 가지고 다닌다.
국어 참고서만 서너권에 영어 사전도 가장 두꺼운 것으로 가지고 다닌다.
그렇다고 이 학생들이 실제로 그런 참고서를 제대로 다 공부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이 참고서가 공부에 도움이 될까, 저 참고서로 공부하면 실력이 더 빨리 늘지 않을까 하여
구입해 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프로그래머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동일한 주제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참고서를 여러 권 구입하는 사람치고 실력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들은 이미 구입해 둔 책을 제대로 공부도 하기 전에 다른 책을 사려고 서점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들이야말로 '지식인' 이다.
그들은 마치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이 전문 용어들을 나열해 댄다.
"RUP이 어떻고, UML은 어떠하며, XP는 이래서..."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기는 하였지만 예전에 잠시 사법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수험생들 중에서 가장 실력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들의 책상에는 온갖 법전과 천 쪽이 넘는 해석서 그리고
동일한 과목에 대한 여러 권의 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염을 깎지 않은 덥수룩한 얼굴에, 빗질은 하지 않은 머리,
그리고 밤샘 공부를 하여 피곤한 듯이 게슴츠레한 눈빛을 지녔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법학 지식이었다.
민법이나 형법의 온갖 주제들은 알고 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민법의 부속 과목인 어음법,
수표법 등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항상 후배들의 지도자였다.
후배들을 모아놓고 '민법 상에서 총유 규정이라 함은...
문중의 재산을 누가 상속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해서...' 라는 식으로 설을 풀어 놓기 시작하면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희한하게 여긴 것은 그런 선배들이 대체로 '시험운'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들에게는 정말 운이 없었다.
그렇게 좋은 실력을 지녔다고 믿었는데도 그들은 삼수, 사수, 오수를 넘어 칠수, 팔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사법시험 준비를 그만 두고 나서 한참 후에야 시험에 합격한 한 변호사로부터 그들이 시험장에 잘 떨어지는 것이 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잘 떨어지는 것은 '주관식 문제 작성 능력' 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아는 것과 말을 잘 하는 것 그리고 문장을 잘 작성하는 것들은 서로 크게 차이가 있는데,
그들은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 하지만, 실제적으로 필요한 문장 작성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사법시험에서 1차 시험은 객관식으로 출제되지만, 2차 시험은 주관식으로 출제된다.
그리고 주관식 답안은 일종의 논술식으로 출제된다.
어떤 법령이나 법의 개념 또는 판례에 대해서 논술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채점자는 논술된 문장만 보고 채점하기 때문에, 문장 자체가 서툴면 점수를 낮게 줄 수밖에 없다.
장황하게 설명한다고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많은 지식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합격할 수 없다.
그들이 합격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하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문장 안에 정선하여 담는 실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1차 객관식 시험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합격하지만,
2차 주관식 시험에는 거의 예외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 후, 어릴 때부터 흥미를 가졌던 프로그래머가 되어 직업으로 삼게 되면서
프로그래머의 세계에서도 이런 현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고수(高手)는 말이 없되 프로그램으로 말하고, 하수(下手)는 말이 많되 프로그램이 시원치 않았다.
고수는 자신의 실력을 기르기 위해 프로그램을 작성해 보는 것에 힘을 기울이는 반면에,
하수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잡지를 뒤지고 모든 최신 주제에 귀를 기울이지만
프로그램을 작성해 보는 것은 귀찮아한다.
오늘날 프로그래밍의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2010년 08월 08일 18시 38분 00초

Posted by Mr.Martin :